KNM ARCHITECTS
건축소묘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공간에서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땅이 갖는 기억은 종종 건축행위의 고려대상 중 후위로 밀려난다. 그러나 모든 땅은 위치에 상관없이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자연환경 변화와 삶의 흔적들이 다양한 형태로 담겨있는 또 다른 형식의 기록장치로 볼 수 있다. 고대 양피지에 글들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여 과거 기록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Palimpsest’ 와 같이 건축 작업은 본질적으로 땅에 묻혀있는 기억들을 발견하고 분석하여 시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내적/외적 요구들을 공간적인 언어로 번역하여 기록하는 작업이다. 또한 건축적 경험이란 사용자들이 시각, 촉각, 청각 등 다양한 감각들을 통하여 온 몸으로 땅의 기억과기록들을 읽어낼 수 있도록 물리적인 객체로 구현하여 건축가와 사용자가 땅 위에 선 건물을 매개체로 서로 교류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공간안에서 발생하는 건축과 사용자 간의 교류는 거리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건축 형태의 차이를 눈으로 확인하고, 재료의 물성을 인지하고,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빛에 의하여 공간이 무겁게 때로는 가볍게 보임을 경험하고, 공간의 크기와 향하는 방향, 그리고 창의 위치에 따라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진행하며 온 몸으로 체험하는 과정을 통하여 공간적 기억이 개인의 심상 깊은 곳에 자리 잡도록 하는 과정 일체를 말한다.
사람이 갖는 공간적 기억이란 개별적인 감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험이 통합된 형태로 존재한다. 건축적 경험이란 건물이 요구하는 기능을 충족하는 동시에 모든 감각기관들을 통하여 공간이 하나의 총체로써 읽혀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위한 모든 과정을 건축가가 충실하게 수행하고 균형 잡힌 공간을 구축하여 사용자에 의하여 의도대로 사용될 때 건축은 본연의 모습을 드러나게 되고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된다.